경북 예천군 예천읍 통명리1984년 8월 9일 밤 붙잡힌 농민군 11명을 생매장한 모래밭에 세워진 비석이다. 이 사건으로 농민군과 민보군의 관계는 급격히 악화되었다.
경북 예천군 유천면 화지리 화지마을
경북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 금당실마을
경북 예천군 예천읍 노상리예천의 향리들은 이곳에 7월 26일 보수집강소를 만들었다. 농민군의 폐정개혁기관으로 알려진 집강소가 진압 측의 민보군 이름으로 사용한 사실이 특이하다. 읍내 한가운데 있던 이 객관은 1972년 지금의 대창중,고등학교로 옮겨져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경북 예천군 용문면 삼금곡리이 유계소는 예천의 양반 문중인 함양박씨의 유생이 모여 경전의 내용을 강론하였던 곳이다. 농민군은 이 건물을 빼앗아 집강소를 설치하였다. 그러나 금당실의 농민군이 읍내의 민보군과 싸워 패배한 직후 민보군에 의해 불태워졌다. 그 뒤 함양박씨 문중에서 다시 복원하여 경담재(鏡潭齋)라 는 현판을 걸었다.
경북 에천군 예천읍 서본리 서정자들
경북 예천군 예천읍 백전리 한천
경북 예천군 용문면 삼금곡리
상주 모서면 사제에 있는 김현영 대접주의 옛집 자리. 8칸 목조 겹집이 있던 이 부근이 모서 농민군의 본거지였다.
경북 상주시 낙동면 낙동리병참부는 일본군이 조선의 내륙지역을 장악하기 위한 교통로 확보를 목적으로 설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