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하동군 화개면화개장터는 조선시대 이래로 전라도와 경상도의 접경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때문에 양쪽의 물산이 풍부하게 거래되었다. 이 때문에 동학농민혁명 당시 이곳은 전라도의 농민군의 경상도로 진출하는데 교부보로 이용되었다.
경남 하동군 하동읍
경남 유형문화재 제 223호 / 경남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
경남 하동군 하동읍김인배의 농민군의 하동 공격은 두 갈래로 이루어졌다. 하나는 망덕 앞바다에서 배로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갔고, 다른 하나는 섬진대교 뒤쪽 섬거나루를 건너 공격하였다. 현재 섬거나루는 그 흔적만 남아있다.
경남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김이배의 농민군이 하동을 공격하기 위해 섬거나루를 통해 이동하였다. 현재는 나루터의 흔적만 남았다.
경남 하동군 하동읍 광평리하동송림은 원래 사형장이었다. 이곳에서 무수한 농민군이 사형당했고 그 시체는 섬진강 강물에 수장되었다. 현재는 유락시설로 이용되고 있다.
경남문화재자료 8호 / 경남 진주시 남성동
경남 진주시 수곡면 수곡읍 대천리하동전투에서 패한 농민군은 수곡장터에서 전열을 정비한 뒤 고성산으로 이동하여 진압군에 맞서 싸웠다.
경남 진주시 소곡면 대곡리고성산은 해발 185미터로 산중턱에 옛 성터가 남아있다. 이곳은 산청,단성,진주,하동으로 연결되는 군사요충지이다. 이곳 전투에서 농민군은 수천명이 죽었다. 이곳 사람들은 이 산을 고승당산이라고도 부르는데 그 이유는 죽은 원혼이 고시랑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마을에서는 제사도 수십 집이 10월 13일 같은 날 지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