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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지역 기념시설

황룡전적지와 동학농민혁명기념탑

동학농민혁명 발대둔산항쟁전적비

소재지 : 전남 장성군 황룡면 신호리 356번지 외 17필지문화재지정 : 사적 제406호(1998.6.10)11894년 3월 20일 무장에서 봉기한 동학농민군은 4월 6일 황토현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후 정읍, 흥덕, 고창을 휩쓸고 무장, 영광으로 세력을 넓혀갔다. 반면, 농민군이 장성과 나주 방향으로 진격해 갔음을 보고받은 홍계훈은 대관 이학승을 장성으로 급히 출동시키지만, 장성 황룡촌에서 경군을 기다리던 농민군에 대패한다. 농민군은 특히 경군의 총알을 막을 수 있도록 대나무를 원통모양으로 엮어 만든 장태(본래 닭을 넣어 키우던 망을 응용)라는 신무기를 이용하여 큰 승리를 거둔다. 황룡촌 전투는 동학농민군이 서울에서 내려온 왕의 부대(경군)를 격파함으로써 지역적 경계, 즉 단순 '민란'을 넘어 '혁명'의 물결을 전국적으로 확장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농민군은 황룡촌 전투 이후 급상승한 사기를 바탕으로 정읍, 원평을 거쳐 4월 27일 마침내 전라도의 수부인 전주성을 점령하게 된다.1994∼97년 광주·전남동학농민혁명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주관하고 전라남도와 장성군의 보조로 황룡전적지에 [동학농민혁명승전기념공원]을 조성하고 [동학농민혁명기념탑]과 안내판 등의 시설을 갖추었다. 근처에는 경군대장이었던 이학승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순의비도 찾아 볼 수 있는데, 아무도 돌보는 이가 없어 역사적 평가가 세월을 두고 달라짐을 느끼게 한다. 황룡전적지는 1998년 사적 406호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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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지역 기념시설

동학농민혁명기념탑

동학농민혁명기념탑

소재지 : 전남 장흥군 장흥읍 충렬리 산 8번지장흥지역의 동학농민혁명은 남도장군 혹은 관산 이장군이라는 별호로 불리었던 이방언 장군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는 장흥군 부산면에 동학농민군 800여명을 배치하고 관군의 아성인 장흥성과 남도육군의 거점인 병영성을 함락하고자 했다. 이방언이 이끄는 농민군은 1894년 12월 3일 장흥성을 하루아침에 함락시키고 그날로 강진성과 병영성도 무혈점령하였다. 그러나 이틀 후 서양총으로 무장한 관군이 유치방면으로 대공격을 감행해왔다.남산과 석대들에 집결해 있던 동학농민군이 석대들(지금의 장흥경찰서와 남외리 고개주변의 들판)에서 전사하였다. [동학농민혁명기념탑]은 장흥 일대 동학농민군의 장렬했던 항쟁을 기리고, 희생된 농민군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1990년 착공하여 1992년 5월 준공된 기념탑의 탑명은 서희환이 글을 짓고 김성식이 조각하였으며, 기념탑의 탑문은 송기숙이 짓고 김승남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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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지역 기념시설

함평동학농민혁명 장경삼, 옥삼, 공삼선생 공적비

장경삼,옥삼,공삼선생 공적비

소재지 : 전남 함평군 신광면 계천리 사천마을 입구 장산들함평지역은 이화진 접주를 중심으로 동학농민혁명의 활동이 대단히 활발했던 지역으로 특히 장경삼, 옥삼, 공삼 삼형제의 활약이 유명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함평 관리와의 유대를 형성하는 등 강한 결속력을 바탕으로 동학사상을 실천한 지역이다. 괴치마을 부지는 당시 농민군이 군사훈련장으로 사용하였으며 삼정들(혹은 삼장들) 역시 경삼, 옥삼, 공삼 삼장군의 이름을 따 지어졌다고 한다. 함평의 동학농민혁명은 적촌리 장터 등 함평 읍내를 중심으로 일어났지만, 집강소는 함평 외곽부인 월야면에 위치하였다. 조정과 일본군은 동학농민혁명이 실패로 끝나자 동학군을 색출하기 위해 현상금을 걸어 밀고제를 시행하기도 하였다. 특히 함평은 영광·나주·강진·장흥·보성·순천 등과 함께 가장 극심한 피해를 본 지역으로 오지영의 [동학사]에 기록되어 있다.함평지역의 동학농민혁명정신은 이후 강인한 항일투쟁으로 이어져 일제는 악명 높은 '삼성삼평(三城三平)'이라는 호칭으로 함평을 칭했다. 1996년 4월에 이상식의 비문을 이병현이 쓰고 나상옥이 조각하여 현재의 자리에 함평동학농민혁명 삼형제 공적비를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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