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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지역 기념시설

우금치 전적지와 동학혁명위령탑

  • 동학혁명군위령탑
  • 추모시비 "다시 살아나는 우금치"

소재지 : 충남 공주시 금학동 산 78-1외 8필지문화재지정 : 사적 제387호(1994.3.17)1894년 11월 9일,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군 주력군은 공주성을 함락하고 서울로 진격하기 위해 주공격로를 우금치로 잡고, 일본군과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전봉준은 "2차접전 후 만여 명의 군병을 점고하니 남은 자는 3천여 명을 넘지 않았으며, 그 후 다시 접전한 후 점고하니 5백여 명을 넘지 않았다"고 진술함으로써 우금치 전투가 동학농민혁명의 최대의 전투였음을 술회했다.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 정권은 부당한 쿠데타의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 동학혁명위령탑을 곳곳에 세우고 군사쿠데타가 동학농민혁명정신을 계승한 것이라는 비문을 새겨 넣었다. 우금치 전적지의 위령탑은 1994년 3월 17일 사적 제 387호로 지정되었지만, 그 훼손정도가 심각하고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 실정이다. 전적지 내에는 [동학혁명군위령탑]과 [추모시비], 안내판과 돌탑, 봉수대 등 기념시설물이 함께 조성되어 있다.

송장배미

  • 송장배비 옆의 용못
  • 송장배미 표지석과 조형물

소재지 : 충남 공주시 웅진동농민군들은 우금치를 곧바로 공격하는 한편 한산소와 박산소, 봉황산의 하고개를 넘어 공주감영의 배후를 치고자 하였다. 그러나 하고개는 마치 병목과 같은 천험의 요새였기 때문에 농민군은 그 시체가 계곡을 가득 메울 정도로 큰 피해를 입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 희생된 농민군의 시체를 한 곳에 모아 이곳 송장배미(강물은 말라도 용못은 마르지 않는다고 전해지는 못 옆에 붙은 논)에 묻었다고 한다. 그 후 이곳에서 사람의 뼈와 해골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고, 이 논의 주인이었던 이상필씨(작고)가 해마다 칠월 칠석에 제사를 지내왔다고 한다. 당시 농민군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송장배미 표지석과 조형물을 함께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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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지역 기념시설

갑오동학혁명군 추모탑

  • 갑오동학혁명군 추모탑
  • 태안지역 동학 전래비

소재지 : 충남 태안군 태안읍 동문리홍주성 전투 패전이후 태안 지역 농민군은 이 곳 백화산에 집결하여 최후 항전을 결의하였다. 그러나 농민군은 동지섣달 설한풍의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거나, 해산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후 관군들에게 체포되어 사살 당했다. 태안지역 농민군 김상휘, 홍기춘 등 수백 명이 체포된 후 이곳 백화산 바위 위에서 십여 명씩 포승된 채 목이 졸려 죽고, 몽둥이로 맞아 죽었다고 하여 이 바위를 교장바위라 부른다. 이밖에 1965년 결성된 태안지역 유족회에서는 후손들의 증언을 토대로, 토성산, 목네미샘 등 동학농민혁명 관련 유적지를 발굴하였다. 1975년에 [갑오동학혁명군 추모탑]이 건립되었으며, [태안지역 동학 전래비]가 2000년에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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