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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기념시설

수운 최제우 유허지

  • 수운 최제우 선생 유허지 비
  • 수운 최제우 선생 유허지 초가와 초당

소재지 : 울산광역시 중구 유곡동 639번지 외문화재지정 : 시도 기념물 제12호(1997.10.9)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1824~1864)가 수도생활 중 득도한 곳으로, 동학교에서 성스러운 곳으로 여기는 유지이다. 수운 대신사 최제우는 31세 되던 갑인년(1854)에 처가가 있는 이곳 여시바윗골에 와서 논 6두락을 마련하고 초가와 초당을 짓고 6년 동안 수도생활에 정진하였다. 유허비는 1997년 천도교 중앙총부와 수운 대신사 최제우의 후손인 진성당 최말란 여사가 건립하였으며 초가는 3칸 13평, 초당은 1칸 8평 총 21평으로 1926년까지 초가와 초당이 있었다는 기록을 전제로 하여 복원하였다. 2002년 12월 경희대학교의 문화재 지표조사와 2003년 울산대학교의 학술복원기초조사를 거쳐 2004년 10월 28일에 준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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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지역 기념시설

고성산성과 동학혁명군위령탑

동학혁명군 위령탑

소재지 : 경남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 산 13-1번지문화재지정 : 시도기념물 제142호(1994.7.4)고성산은 산청, 하동, 단성, 진주로 통하는 길목에 있고 지리산과 가까워 이곳 농민군들은 한쪽은 하동, 한쪽은 지리산으로 들어갔다고 전해진다. 농민군 5천여 명이 주둔하여 치열하게 싸웠던 고성산은 조선 후기까지 8~9부 능선에 산성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도 능선 곳곳에 암벽이 형성되어 있고 산 정상 부근에는 의자와 탁자의 잔해로 보이는 바위 등의 흔적이 남아 있어 당시 동학농민혁명군의 활동을 짐작해 볼 수 있게 한다. 이 지역 사람들은 이 산을 고승당산이라고도 부르는데, 죽은 원혼이 "고시랑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전투가 끝난 후 일본군이 농민군 시체 186구를 거두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나, 당시 토벌된 농민군의 수가 수천을 넘어섰고 인근 마을에서 수십 집이 10월 13일 한날 밤에 제사를 지내왔다고 전해진다.천도교 주관으로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인 1994년(포덕 135년) 11월 11일 높이 15m의 화강암 탑으로 [동학혁명군위령탑]을 건립하였고, 매년 위령제를 개최하고 있다.

동학혁명위령탑 사진동학혁명위령탑 사진동학혁명위령탑 사진동학혁명위령탑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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