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역사속에 잠자던 이야기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동학농민혁명기념관

배너

  • 국민의소리
  • 자주묻는 질문과 답변
전시패널 내용 보기
제목 황룡촌전투(黃龍村戰鬪)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6-06-20 조회수   1,887
내용
"농민군은 황토재전투 후 고창·영광·함평·무장을 거쳐 장성에 이르는 동안 승승장구하면서 진격하였고, 농민군을 뒤쫓아 내려온 양호초토사(兩湖招討使 : 농민군 토벌 책임자) 홍계훈(洪啓薰 ?∼1895)이 이끄는 경군과 장성에서 만나 접전을 벌였다. 이것이 황룡촌전투이다.

1894년 4월21일 함평을 출발한 농민군은 장성에 도착하여 황룡촌 월평(月坪) 장터에서 쉬면서 본진은 삼봉(三峰) 아래에 진을 설치했다. 함평에서 나주로 들어간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사잇길로 빠져 장성으로 들어 가버린 농민군의 진로에 홍계훈은 당황하였다. 홍계훈은 대관 이학승·원세록·오건영에게 농민군의 동정을 살피게 하면서 황룡강가에 집결하여 장터에서 점심을 먹고 있던 농민군을 먼저 공격하여 전투의 포문을 열었다. 엉겁결에 공격을 받아 수십명의 사상자를 낸 농민군은 곧바로 삼봉에 올라가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장성의 황룡강 일대의 지형지세에 익숙한 농민군들은 삼봉의 정상에서 학 모양의 진을 치고 관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포를 쏘아대는 관군 앞으로 장태가 수없이 굴러 내려왔다. 장태는 원래 닭을 키우는데 쓰는 닭구장태를 만드는 법을 이용해서 제작한 것으로 농민군은 이 장태 안에다 짚을 넣어서 불을 붙인 뒤 수백 개를 경군 쪽으로 굴려 화력을 모두 소모시키고 그 뒤에서 숨어서 경군에 접근하여 공격하였다. 불을 뿜은 장태를 이용한 농민군의 맹공격에 경군의 전열은 무너졌고, 전투는 농민군의 승리로 끝났다.
이처럼 농민군은 지역적 여건과 상황에 맞는 전략을 세우며 전투에 대비했으며, 전투에 임해서는 죽음을 무릅썼다. 황룡촌전투의 승리 역시 당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이런 철저한 준비와 용맹함을 통해 성취한 것이었다.

왕이 파견한 경군을 이겨냈다는 승리감은 농민군의 의식을 크게 변화시키면서 ‘왕의 명령을 받드는 경군에는 대항하지 않는다’는 의식의 한계를 극복하는 계기가 되었다. ‘왕의 명령’을 받든 경군과 싸워 이겼다는 것은, 농민혁명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황룡촌전투는 농민혁명의 와중에서 농민군의 의식과 의지가 새 세상을 향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