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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주성(全州城) 점령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6-06-20 조회수   1,477
내용
"무르익은 혁명의 희망 - 전주성 점령과 완산전투

1894년 4월 27일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농민군은 전주성을 점령하였다. 전주성 점령은 동학농민혁명의 전 기간 중 농민군이 거둔 최대 승리였다. 농민군은 4월 25일 정읍과 태인을 거쳐 금구 원평에 이르렀다. 이때 전라감사 김문현은 4월 18일에 파면되었고 후임 김학진(金鶴鎭)은 아직 부임도 하지 않았다. 전주를 지키던 감영병은 초토사 홍계훈을 따라 갔기에, 전주성은 거의 무방비 상태였다.

26일 농민군은 전주 삼천까지 진격하였고, 4월 27일 2~3만여명의 농민군은 전봉준, 김순명(金順明), 아기장수 이복용(李福用) 등의 지휘하에 전주성을 압박하였다. 또한 이날은 서문 밖 장날로 농민군들은 장꾼들과 함께 손쉽게 섞여 성안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리고 정오를 전후해 본격적인 공격을 감행하여 삽시간에 전주성은 점령되었다. 한마디로 무혈(無血) 입성이었다.

점령 과정에서 전라감사, 판관(判官), 영장(營將) 등 감영의 관원들은 모두 동문 밖으로 달아났다. 감사 김문현은 공주로 도주하였고, 판관 민영승(閔泳昇)은 도주 중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가로채 위봉사 대웅전에 모시며, 영정을 보호하였다는 명분을 얻어 책임을 모면하고자 했다.

동학농민군의 전주 점령은 전라도의 점령이자, 조정에 대한 정면 도전을 뜻했다. 당황한 조정은 29일 밤, 고종의 주재아래 긴급 대신회의를 열고, 결국 청군에 지원요청을 하였다.
[참고] ① 전주부성 지도, ② 동학100년 195쪽 원평-전주 진격로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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