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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완산전투(完山戰鬪)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6-06-20 조회수   1,265
내용
"무르익은 혁명의 희망 - 전주성 점령과 완산전투

동학농민군과 관군이 전주성을 두고 1894년 4월 28일부터 5월 3일까지 치열하게 공방전을 펼치게 되는데 이를 완산전투라 한다.

4월 28일 홍계훈의 경군은 전주성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완산(完山)에 진을 치고, 전주성을 향해 최신식 포를 쏘며 공격을 시작했다. 완산칠봉을 점령하려는 농민군에 타격을 가했으며, 성 안팎의 민가 수천 호가 불에 탔다. 농민군은 4월 29일 북문을 통한 황학대 공격, 5월 1일과, 2일의 남문·서문을 통한 공격도 모두 농민군 수백명의 희생만 가져오며 실패로 끝났다. 5월 3일 농민군과 경군 사이에 최대의 격전이 벌어졌다. 농민군은 아침 10시경부터 사마교(司馬橋 : 현 다가교)를 지나 유연대(油然坮 : 현 기전여고 북서쪽 최고봉)를 공격하였다. 농민군은 남쪽으로 달아나는 경군을 추격하여 경군 본영까지 육박하였다. 그러나 농민군은 경군 본영의 대포공격을 집중적으로 받아 용장 김순명, 아기장수 이복용을 비롯하여 200~500명에 이르는 전사자를 내고 성안으로 물러났다. 이때 전봉준은 왼쪽 허벅지에 총상을 입었으며, 이 치열한 격전은 오후 6시경에야 끝이 났다.

이러한 완산전투의 결과 이전의 황토재전투·황룡촌전투·전주성 점령 등으로 치솟았던 농민군의 사기는 크게 꺾였고, 궁지에 몰린 가운데 농민군 내부의 동요마저 초래하였다. 3일 이후로 더 이상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다. 완산전투는 동학농민군의 전주성 퇴각과 관군과의 전주화약을 맺게 되는 동학농민혁명의 중요한 분수령이 되었다.

[참고] ① 완산전투 지형도 작성요함(완산칠봉 등), ② 완산전투 일지(도표) 작성요함. ③ 현재 완산칠봉, 유연대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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