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역사속에 잠자던 이야기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동학농민혁명기념관

배너

  • 국민의소리
  • 자주묻는 질문과 답변
전시패널 내용 보기
제목 동학농민혁명의 현재적 의미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6-06-20 조회수   2,035
내용
"1894년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은 한국사의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 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의의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한국사의 발전과정에서 민중이 역사발전의 주체로 등장하였다는 점이다. 동학농민혁명 이전에도 수많은 민란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민란은 단순한 한풀이에 불과했으며 조직적이지도 못했으며 목표를 가지지도 못하였다. 반면에 동학농민혁명을 주도한 농민군들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동학농민혁명은 민중이 역사발전의 주체라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농민군이 집강소를 통해 농민자치를 실현한 것은 바로 이러한 역사 발전의 주체로서의 역할을 확실히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둘째, 조선후기 이래 지속적으로 전개해온 반봉건의 사회개혁을 지향하였다는 점이다. 1800년 이후 60여 년간 지속된 세도정치는 조선의 근대화 기회를 상실하게 만들었으며, 조선을 가장 악화된 상태로 만들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대원군 정권은 어느 정도 개혁을 실시하였으나, 시대적 변화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보수유생과 민비의 공격으로 실각하였다. 이후 조선에는 민비를 중심으로 한 민씨정권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조선을 이끌어 갈만한 정치적 역량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농민들은 낡은 구질서를 과감하게 거부하고 새로운 사회구조를 지향하였다.

셋째, 한국근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로 제기된 반침략과 반외세를 분명히 하였다는 점이다. 농민군은 외세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였으며 이를 극복하려는 민족사적 요구에 가장 먼저 희생적으로 나섬으로서 근대 민족운동의 효시가 되었다.

넷째, 동학농민혁명으로 한국근대사의 방향이 결정되었다는 점이다. 19세기 후반 조선은 외세배격의 자주화와 반봉건의 근대화라는 두 가지 과제를 가지고 있었다. 이에 대해 지배층은 반외세의 입장에서 위정척사운동을 전개하기도 하고, 반봉건의 입장에서 개화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은 모두 자주화 또는 근대화 한 측면만을 강조하고 주장함으로서 당시 조선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다. 즉 위로부터의 개혁은 실패하고 만 것이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농민들이 아래로부터 개혁을 추진하여 동학농민혁명을 일으켰던 것이다.

다섯째, 동학농민혁명은 한국 민족민주통일운동의 시발점이라는 것이다. 동학농민혁명은 실패하였다. 실패한 혁명이라는 말이 성립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이후 전개되는 한국사의 발전과정에서 동학농민혁명이 민족민주통일 운동의 정신적 뿌리로서 자리 잡게 되었기 때문이다. 항일의병운동, 3·1운동, 상해임시정부, 광복군 활동 등이 바로 동학농민혁명으로부터 그 정신적 뿌리를 계승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며, 현대에 전개된 여러 민주화운동인 4·19 혁명, 5·18 광주민중항쟁, 6·29 민주화운동 역시 동학농민혁명으로부터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