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마지막 동학군! 사람, 최현식을 말하다
(사)정읍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전 이사장
조광환
인연의 끈이 닿아 분에 넘치게도 나에겐 두 분의 큰 스승님이 계셨다. 한 분은 수년전에 작고하신 차복남 선생님이시다. 차복남 선생님께서는 그 유명한 차천자(본명 차경석으로 동학농민혁명 당시 정읍 유명 접주였던 차치구의 아들이며, 일제 치하 시절 보천교라는 민족종교를 창시한 분이다)의 아드님이시다. 그 분께 3년 간 논어부터 시작하여 대학, 중용, 주역 등을 차례로 배웠다.
다른 한 분은 ‘이 시대 마지막 동학군' 이란 별호를 얻으신 최현식 선생님이시다. 안타깝게도 선생님께서는 지난 5월 4일 오전 10시 50분께 향년 89세로 유명을 달리하셨다. 필자가 동학농민혁명의 올바른 복원과 자리매김을 위해 평생을 바치신 선생님과 인연을 맺게 된 지가 어언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5년 당시 나는 정읍의 동신여상에 새내기 역사 교사로 부임하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국사 뿐 아니라 이 고장의 역사도 가르쳐야 되겠다 싶어 향토사에 대한 관심을 가지며 직접 현장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때로는 먼지 매캐한 시골길을 덜덜거리는 버스로 또 때론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돌아다녔다.
그 속에서 난 동학농민혁명이란 엄청난 역사를 만나게 되었다. 동학농민혁명에 흠뻑 빠져든 나는 당시 학계에서도 전문가로 소문난 정읍문화원장으로 계신 선생님을 찾아뵙게 되었는데 이것이 선생님과의 첫 만남이었던 것이다. 막연하게도 동학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 왔다는 일면부지의 낯선 젊은이에게 보여주셨던 인자하신 미소와 잔잔한 말투가 인상적이었다. 이때 선생님으로부터 『갑오동학혁명사』란 책자를 받게 되었다.
책을 보다 막히거나 의문이 생기면 어김없이 선생님을 찾았다. 그런 필자를 제법 신통하게 여기셨는지 그때마다 귀중한 시간을 내주시며 많은 가르침을 주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필자 같은 이유로 선생님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대개는 책자를 받아가는 정도로 그치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한다.
선생님께서는 항상 자신을 높이시려고 하지 않으셨던 이 시대 얼마 남지 않은 진정한 선비이자 학자이셨다. 필자가 20여년이 넘게 선생님을 곁에서 지켜본바 단언컨대 현존하는 관련 학자들치고 선생님께 현장답사와 자문과 사료 등 학문적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 학은(學恩)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학자들은 선생님의 학설을 제도권 밖의 재야사학자라는 이유로 은근히 격하시키려는 경향도 있었다. 그때마다 선생님께서는 “내가 좋아서 공부한 것이지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서 공부한 것은 아니다. 학문적 진실은 훗날 반드시 드러나게 되는 법이다.”라고 하시며 오히려 흥분한 필자를 달래시곤 하셨다.
공부가 더 필요하면 자택을 방문하게 되었고 그때마다 선생님께서는 언제나 의관부터 바로 갖추셨는데, 때론 2시간이 넘게 말씀하시는데도 자세 한번 흐트러트리지 않으셨다. 또 공부가 끝나면 비가 오는 날에도 어김없이 문밖에까지 나와 배웅하시는 선생님을 뵈면 공부보다도 사람된 도리와 정을 배웠던 것 같다.
선생님께서는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공부도 중요하지만 그 정신을 계승하고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잊지 않으셨다. 이러한 선생님의 가르침 속에서 마침내 선생님과 필자의 관계는 정읍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의 회장과 사무처장이란 관계로까지 발전하게 되어 ‘갑오동학혁명기념제’를 비롯한 많은 사업을 추진하였다.
현재의 정읍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는 최 선생님의 개인의 역사와도 중첩된다. 1967년 12월 전북지역의 뜻있는 분들과 함께 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의 전신인 ‘갑오동학혁명기념사업회’를 발족하시어 이듬해인 1968년부터 매년 ‘갑오동학혁명기념제’를 개최하여 왔다. 사실 그 당시만 해도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사건은 정부에 반한 반란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으며 학계에서조차 연구를 기피하거나 금기시되어오던 때인지라 대단한 용기가 없으면 동학농민혁명 선양사업을 전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 선생님은 청빈하고 솔직한 성품을 지니셨다. 사모님의 말을 빌리면 선생님께서는 동학농민혁명을 연구하시면서 단 한 번도 집에 돈을 가져오신 적이 없었다고 한다. 언젠가 이 말이 생각나 선생님께 질문을 올렸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동학농민군 후손들을 만나고 다니다 보니까 내가 오히려 호사스럽게 살고 있다는 부끄러움을 느꼈어. 하지만 자식들 학비 한번 제때 주지 못했으니 자식들에게는 미안하지”라고 하셨다. 또 언젠가 선생님께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이에 제일 큰 소원은 남북이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을 보고 싶다고 하신 선생님께서 고인이 되셨다.
이제 고인은 떠나갔지만 동학유적지 곳곳에 그리고 우리 후학들의 마음에 선생님의 자취가 오롯이 남아 있다. 이제 남은 것은 “동학의 반봉건은 평등세상을 꿈꾸며 자유 민권 사회를 만드는 것이고, 반외세는 진정한 자주 국가를 만드는 것”이라고 하셨던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동학농민군들이 꿈꿨던 민주세상, 통일세상을 이룩하기 위하여 우리가 한 힘 보태는 것이다. 이것이 고인이 바라는 것이고 시대적인 요구이기도 하다.
삼가 선생님의 명복을 빌면서 불초제자 조광환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