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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여름 4호
최제우의 동학 창도

  최제우의 동학 창도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조사부 부장

이병규


  1860년 최제우에 의해 창도된 동학은 1894년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에서 사상적 토대와 조직적 기반을 제공하였다. 동학농민혁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학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이에 따라 동학의 교조(敎祖)인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와 동학의 창도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몰락 양반의 서자로 태어나다


  최제우는 1824년 지금의 경상북도 월성군 견곡면 가정리에서 몰락한 양반 최옥(崔鋈)의 서자로 출생하였다. 최옥은 과거시험에 여러 차례 응시했지만 번번이 낙방하였고 두 번이나 부인을 맞아들였으나 자식을 얻지 못하였다. 마침내 세 번째로 이웃의 과부 한씨를 맞아들여 63세에 마침내 아들 하나를 얻었는데 바로 최제우였다.


  최제우는 어릴 때부터 학문적 재능이 매우 탁월하여 수많은 고전들을 일찍 독파하였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자신이 조선 사회에서 차별받는 서자임을 알고 신분제도의 모순을 개탄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17세 때에 아버지 최옥을 잃고 부친의 3년상을 마친 뒤 새로운 활로를 열어보려고 집을 나와 전국 유랑의 길을 나섰다. 이때가 그의 나이 20세 때였다.



  전국 각지를 유랑한 최제우


  최제우는 이때부터 집에 돌아온 31세 때까지 11년간 전국 각지를 유랑하며 다양한 경험을 통해 활로를 찾아보려고 노력하였다. 무술을 익히어 서자들에게 응시 기회가 열릴 수도 있는 무과에 응시해 볼까 하고 활쏘기와 말달리기를 익혔으며, 시장에 나가 포목상도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의술과 침 등 한의학도 공부해 보았고, 점치는 방법 등 잡술에도 손을 대 보았다. 도통을 하려고 선교(仙敎) 공부를 하기도 하고, 전국의 유명한 도사를 찾아다니기도 하였다. 전국의 유명한 사찰과 암자를 돌면서 고승을 만나 불교의 진리를 깨쳐 보려고도 하였다. 그는 심지어 서학(西學)에 오묘한 진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서학도 섭렵해 보았다. 그러나 최제우는 그 어느 것에도 성공하지 못했으며 그 어느 곳에서도 활로를 찾지 못했고, 득도도 하지 못하였다. 그는 고향과 처자를 떠난 지 11년 만인 1854년 9월에 울산의 처가에 기대어 살고 있는 처자에게로 돌아오게 되었다.



  새로운 도를 창도하기로 결심하다


  최제우의 11년간의 전국 유랑은 비록 득도는 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헛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이 유랑을 통하여 당시의 조선 사회의 실상과 백성들의 처지를 적나라하게 체험하여 자기 자신의 새로운 관점을 정립할 수 있었다. 이윽고 그는 기존의 사상과 종교에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을 바에는 나라와 백성을 구제할 수 있는 새로운 도(道)를 자기 자신이 창도하려는 뜻을 세웠다.


  최제우는 36세인 1859년 10월에 처자를 이끌고 고향인 경주로 돌아왔다. 그는 구미산(龜尾山) 계곡에 그의 아버지가 지어놓고 책을 읽던 정자인 용담정(龍潭亭)을 찾아가 거처를 정하였다. 최제우는 이 용담정에서 세상을 구원할 새로운 도를 깨치지 못하면 세상에 다시 나아가지 않을 굳은 결심을 한 다음, 이름을 본래의 제선(濟宣) 에서 제우(濟愚)로 고쳤다. 백성들을 구제한다는 뜻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제단을 차려놓고 정성껏 기도를 드렸으며, 매일 밤마다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득도를 위한 명상과 구도활동을 계속하였다.



  마침내 찾아온 득도의 날


  최제우에게 마침내 득도의 날이 왔다. 1860년 4월 15일 최제우가 지성을 드리고 정신집중을 하는 중에 무아지경(無我地境)에 든 가운데 공중에서 천지가 진동할 때와 같은 큰 소리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최제우가 벌떡 일어나 누구냐고 물으니 대답이 들려오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겁내지 말라. 세상 사람들이 나를 하느님이라고 부르는데 너를 택하여 하느님의 도를 사람들에게 가르치도록 했다”고 하였다.


  최제우에게는 이러한 하느님의 말씀이 천지를 진동하는 듯한 큰 소리로 들려왔으나, 함께 살고 있던 가족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였다. 그는 이 음성이 자기만이 들은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확신하였다.


  이로써 최제우는 온갖 정신적 작업과 노력 끝에 종래의 유교, 불교, 도교를 종합하고 음양오행설, 역학사상, 풍수지리설 등을 흡수해서 그 자신의 새로운 사상과 종교를 창도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새로운 도를 창도하자 그 이름을 ‘동학(東學)’이라고 명명하였다. 동학농민혁명의 기원이 되는 동학 사상이 싹트는 순간이었다.



  참고문헌

  표영삼, 『동학 1 : 수운의 삶과 생각』, 통나무, 2004

  신용하, 『동학과 갑오농민전쟁연구』, 일조각,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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