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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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여름 4호
代를 이어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고, 그 정신을 잇는 가족

  代를 이어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고, 그 정신을 잇는 가족

   

문흥식(동학농민혁명유족회 이사) · 경식 형제 



  “문 장자 로자 증조할아버지가 동학농민혁명 2차 봉기 당시 태안 접주로, 그 아들 되시는 문 구자 석자 할아버지가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시다 22살에 처형당하시고, 동생 문 병자 석자 할아버지는 장자 로자 할아버지로부터 그 정신을 배워 3·1만세운동을 주도하시고, 그분의 아들인 원자 덕자인 우리 아버지는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잇기 위해 동학농민혁명 선양사업에 헌신하다 돌아가셨으며, 지금 저와 동생들은 아버지의 뜻을 이어서 동학농민혁명 유족의 일원으로 선조를 현창하고 그 유업을 받드는데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이렇게 4代를 이어 자랑스러운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와 함께 해온 문장로, 문구석 참여자의 증손인 문흥식 선생과 친동생인 경식을 6월 13일 안산시 자택에서 만나, 이들 형제에게서 동학농민혁명에 얽힌 파란 많은 가족사를 들어봤다.


  문 선생은 정읍에서 먼 걸음(?)으로 자택을 찾은 기자를 반가이 맞았다. 그는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전국을 대상으로 동학농민혁명 선양사업 등을 전개해야 하는데, 재단이 지방으로 내려간 것은 자칫 범국가적으로 이러한 사업을 펼치는데 어려움이 따르지 않겠냐 ”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전하며 자리에 앉았다.


  문흥식 선생의 가족도 동학농민혁명 유족이 겪어야 할 질곡의 세월을 비껴갈 수 없었다. 비록 작은 평수의 아파트지만, 옛날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 고생한 생각을 하면 지금의 내 집은 남부러울 게 하나도 없다고 한다. 오로지 동학농민혁명 위령탑 조성을 위해 세상 사람들에게 ‘땡땡이중’소리 들어가며, 며칠씩 집을 나가서 낮이고 밤이고, 참여자 유족을 찾아 십시일반 기금을 부탁하며, 세상물정과는 담을 쌓고 사셨던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것은 가난한 집의 10남매 장남이었다.


  그 아버지가 바로 1978년 태안읍 백화산 기슭에 ‘갑오동학혁명군추모탑’을 건립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고 문원덕(文源德)선생이시다.


  태안읍 백화산 기슭에 ‘갑오동학혁명군추모탑’을 건립하는 일까지는 성공을 했으나, 동학혁명 당시 북접의 최초 기포지였던 원북면 방갈리(갈마리)에 ‘기포기념탑’을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의 결성을 준비하던 단계에서 72세로 별세하신 문원덕 선생은 태안지역 동학혁명기념사업의 초석을 닦으신 분으로 평가된다.


  태안이 갑오 동학혁명 당시 내포지역 북접 동학혁명의 진원지이면서 최후의 항전지였다는 사실은 태안읍 백화산 기슭에 세워져 있는 ‘갑오동학혁명군추모탑’이 잘 말해준다.


  문흥식씨의 동학농민혁명 가족사의 정점에는 문원덕 부친의 할아버지인 문자 장자 로자 할아버지가 계신다. 그가 1893년 2월 초 상암 박희인의 권유로 아들인 문구석과 함께 부자가 최초로 동학에 입도하여 1894년 10월 태안 동학혁명의 기포를 주도했던 원북면 방갈리 문장로(文章魯) 접주(接主)로서 2차 항일 봉기 시 북접 내포지역 최초 기포를 방갈리 자택에서 모의하고, 태안관아로 진격하여 동학 두목 30여 명을 구출하였으며, 해미 승전곡 전투, 덕산, 예산 및 홍주전투에 참전하여 지휘하였다.


  아들인 문구석은 접사(接司)로서 홍주전투 후 피신 중 때마침 들이닥친 관군에게 접주인 아버지를 살리고자 “나를 대신 잡아가고 우리 아버지를 살려달라‘는 애원을 하며 체포되어 그해 22살의 나이에 11월16일 태안에서 총살당한다. 관군의 눈을 피해 무려 40여 km를 걸어와 결혼한 지 1년만에 잃은 남편의 시신을 찾아 고이 묻은 채장수 할머니는 지금도 태안지역에서는 효심 많은 열부로 회자되고 있다.


  문흥식 선생도 채장수 할머니가 훈육하였다고한다. 문흥식 선생은 손(孫)이 없던 문구석 할아버지의 양자가 된다.


  한편 문흥식씨의 친할아버지인 문병석 선생은 홍주전투 패배 후 관군 일본군의 지목으로 부친인 문장로 가솔과 함께 16년 동안 은거생활을 하며, 아버지에게 영향을 받아 1919년 3·1운동 당시 예산군 책임자로 활약하며 예산, 신례원 장날에 3·1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예산경찰서에 구속 수감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다.


  이러한 흔치않은 동학농민혁명 가족사를 가진 문흥식 선생은 그 여동생인 문영식씨가 고스란히 문원덕 선생의 유업을 물려받아. 지역에서 선양사업을 하고 있기도 하다.


  문흥식 선생은 3대가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고, 그 정신을 잇는 우리 가족이 무한히 자랑스럽지만, 하루속히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이 제정되고 국가유공자로 서훈 받아, 우리 선조들의 명예를 실질적으로 찾아드리는 계기가 빨리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동석한 동생인 문경식씨는 초창기 동학농민혁명유족회 창립부터 가장 젊은 나이에 발기인으로 참여할 만큼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자부심과 미래지향적인 가치에 대한 기대가 높다. 그가 꿈꾸는 동학농민혁명의 바람직한 기념과 선양사업에 대한 진정성이 있는 노력이 이제는 결실을 맺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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