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던 날의 함성, 보람찬 놀이판을 기다리며…
명지전문대학 교수, 소설가
채길순
동학농민혁명은 당시 민중들이 봉건사회의 모순을 극복하는 동시에 일제와 서구열강의 침략으로부터 벗어나려했던 우리 민족사 최대의 변혁 사건이다. 이 저항적 전통은 역사의 고비 때마다 정신적 지주가 되어 3·1운동, 광주학생운동, 4·19 혁명, 부마민중항쟁, 광주민중항쟁으로 맥을 이었다.
소설에서 동학혁명은 민중들의 모순된 삶을 극복할 대안적 소재로 꾸준히 활용되어왔다. 여기서는 역사소설에서 동학혁명을 소재로 삼은 소설(부분 포함)을 시대별로 살펴보고자 한다.
동학혁명을 소재로 한 최초의 역사소설로는 이돈화의 『동학당』(1935)을 꼽을 수 있다. 이 소설은 당시 포교 목적의 동학소설과 달리 역사적 사실과 허구가 잘 어우러졌고, 최제우 최시형 손병희 3대 동학지도자를 주인공으로 다루고 있다.
동학혁명 소재의 소설은 한동안 공백을 보이다 1970년대 독재정권에 맞선 민주화운동 시기에 역사소설 창작의 붐을 타고 본격화되었다. 최인욱 『전봉준』(1967), 이용선 『동학』(1970), 서기원 『혁명』(1972), 유현종 『들불』(1976), 박연희 『여명기』(1978) 등 5편이다. 이 소설들은 사회사적 인식을 바탕으로, 전봉준을 영웅화하거나 하층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이다. 하지만 주인공의 초인적인 능력에 의존하거나 하층민에 대한 탄압이 지나치게 과장되게 표현하여 당시 사회의 총체성을 드러내지 못한 채 통속성에 머물거나 원민의 한풀이 수준에 머무는 한계를 드러냈다.
1980년대는 민중들이 군부독재의 철권에 맞서 혈전을 벌이던 시대로, 이 시기 역사소설은 사회 집단에 관심을 기울이는 동시에 인간해방을 보여주는 특징을 들 수 있다. 소설로는 안도섭 『녹두』(1988), 문순태 『타오르는 강』(1988) 두 편으로, 당시 역동적인 사회 분위기에 비해 작품은 많지 않았다. 역시 전봉준을 중심에 둔 원민들의 한풀이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여기에 월북 작가 박태원이 쓴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표본인 『갑오농민전쟁』(1988)이 남쪽 독자들에게 소개되어 주목을 받았다.
1990년대의 문학계는 문민정부가 판을 벌인 동학혁명 1백주년이 있었고, 세계사적으로는 베를린 장벽 붕괴(1989)와 함께 동서 이념 대립이 붕괴하는 변혁이 있었다. 우리 사회는 체제와 반체제의 대응논리가 보수와 진보의 이념 대립으로 재편되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역사소설이 붐을 이뤘다.
강인수 『낙동강』(1992), 졸저 『소설 동학』(1993), 뒤에 『동트는 산맥』(2000)으로 재출간, 한승원 『동학제』(1994), 박경리 『토지』(1994), 송기숙 『녹두장군』(1994), 강인수 『최보따리』(1994), 이병천 『마지막 조선검 은명기』(1994), 졸저 『흰옷 이야기』(1997) 등 역사소설이 홍수를 이뤘다. 이 시대 역사소설의 특징은 전라도 배경을 벗어나 다양한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여기서는 문학적 관심이 높았던 『토지』와 『녹두장군』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토지』의 첫 사건은 구천과 별당아씨의 신분을 초월한 애정 결합이고, 광에 갇혔다가 도망치는 사건이다. 구천은 윤씨부인이 연곡사에 불공을 드리러 갔다가 우관스님의 친동생이자 동학군 장수 김개주의 겁탈로 태어난 사생아다. 구천이 자라 동학도가 됨으로써 시대적 상징 인물이 되는데, 끝내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다. 『토지』에서 동학혁명은 단지 비극의 단초가 됨으로써 동학혁명에 대한 바른 인식이나 전망은커녕 부정적이다. 하필 동학 장수의 겁탈인가. 이에 비해 송기숙의 『녹두장군』은 오랜 세월을 두고 공을 들인 본격적인 동학혁명을 소재로 다룬 소설로, 민중들의 열망을 고유 정서와 사상을 총체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특히 1980년 광주민중항쟁의 대중적 역사체험을 통해 역사와 변혁운동에 대한 사회과학적 인식을 역동적으로 잘 담아낸 수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금까지 발표된 동학혁명을 소재로 한 소설들은 취약한 역사 기록을 토대로 쓴, 원민들이 폭력을 앞세운 한풀이 사건으로 형상화 되었다. 사건을 총체적으로 보기보다 ‘폐정개혁안’이 관철된 전주화약을 사건 중심에 두었고, 전라도 지역 전봉준을 영웅화하는데 그쳤다.
이 과정에서 당시 동학 지도자들이 투항적 인물로 묘사되었고, 동학사상도 평등과 개혁 사상을 내세워 ‘인내천’, ‘광제창생’ 등 관념어를 남발할 뿐이다. 그 원인은 모든 소설들이 전라도 지역 전봉준을 중심에 둔 초기 연구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올해는 동학혁명 117주년으로, 최근에는 동학혁명을 소재로 한 소설 창작의 맥이 끊겼다. 이제 동학혁명사 연구가 자유롭고, 우리 앞에 심화된 연구가 놓였지만 더 이상 동학혁명을 본격적으로 다룬 소설이 나오지 않고 있다.
졸저 『조 캡틴 정전』(2011)이 동학혁명의 일부분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근심스러운 것은 동학혁명사에 대한 일반 대중의 관심이 멀어졌다는 점이다. 막상 놀이판을 펼치자 흥이 시들해진 셈이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깨어있는 독자들이 있어 아픈 시대를 이끌 선구자를 기다리듯, 동학혁명의 뜨거운 함성을 보람차게 풀어낸 소설을 기다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