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과 역사를 공부하는 대학생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석사과정
박세연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는 5월 26일부터 28일, 총 2박 3일간 춘계답사를 진행하였다. 춘계답사의 주제는 바로 동학농민혁명이었다. 우리 학과는 자칫 문헌을 통한 역사 공부에만 매몰되었을 때 망각할 수 있는 역사의 현재성-특히 지역에서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는 역사적 현장에 대한 감각을 되새기기 위한 답사를 지향해 왔고, 그런 의미에서 고창, 정읍, 부안, 나주, 군산 일대를 답사하면서 동학군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과거를 오늘에 느껴보는 기회를 가지고자 하였다.
답사를 진행하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동학농민혁명의 시발점이 되고, 또 농민군의 거점이 되었던 많은 옛 고을(고부·태인·무장)들이 지금은 축소되고 사라져 흔적만을 남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반면 관군과 민보군이 농민군을 막았던 나주에는 나주객사와 향교 그리고 ‘반란군’을 막아낸 기념비인 금성토평비가 시내 한복판에 불완전하게나마 남아 있어 무장·고부·태인 등의 읍치가 상당부분 파괴된 것과 비교가 되었다.
또 한 가지 인상깊었던 것은 피향정 옆에 남아있는 조병갑의 아버지, 조규순의 영세불망비였다. 검은색 돌에 주변 다른 공덕비보다 그다지 크지도, 작지도 않은 비석 하나가 동학농민혁명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일으킨 계기가 되었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만석보도 혁파 되었는데, 저 비석은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였다. 조병갑이 세운 저 공덕비는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은 그만큼 동학농민혁명이 철저히 진압되었다는 뜻일까? 비석의 보존은 한 편으로는 역사적 유물의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다행이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역사적 평가와 청산이 끝나지 않은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 창 밖에는 넓은 평야를 배경으로 동진강이 흐르고 있었다. 한때 조선의 절반을 먹여 살렸다는 호남, 그 들녘에서 일하는 농민들은 그 중 얼마를 자신의 입으로 가져갈 수 있었을까? 백산에 올랐을 때 더욱 확연히 보이는 평야는 단순히 넓다는 감상을 넘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역사학이 사람의 일을 다루는 학문이라면 때로는 현장에서 직접 보고 느끼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더 많지 않을까? 이번 동학농민혁명 답사는 대학에서 역사라는 학문을 공부하는 우리 모두에게 이런 생각을 가지게 하는 답사였다.
